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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스타일리스트와 자동화된 디자이너 - 패션과 인공지능

  • 2019-10-18
  • 112
  • by 배가브리엘
l 패션계의 화두로 떠오른 “맞춤형 경험(Customized Experience)“

핸드폰의 날씨 애플리케이션에서 기온을 살펴보고, 일정과 메모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해 중요한 회의가 있는 날은 아닌지 확인한 후 비로소 옷장을 여는 아침. 색상과 소재, 팔 길이와 허리둘레까지 꼼꼼히 체크한 다음에야 온라인 쇼핑몰에서 결제를 진행하는 오후. 그러나 그렇게 공들여 고른 옷도 어딘가 마뜩잖게 보이기 마련이고 막상 배송받은 상품이 기대와 달라 반품을 진행하는 일도 다반사다.

한데 누군가 나를 대신해 매일 아침마다 날씨와 방문 장소, 예정된 활동 등에 가장 적합한 옷을 골라줄 수 있다면 어떨까? 서로 구분하기도 번거로운 온라인 쇼핑몰들을 나 대신 돌아보고, 평소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인 데다가 체형에도 잘 어울리는 옷을 찾아준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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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강현실과 챗봇 등을 필두로 하여 각종 첨단 기술들이 패션산업으로 눈을 돌리는 중이다. 패션과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패셔놀로지(Fashion-ology)’와 ‘패션 테크(Fashion-tech)’라는 단어들도 생겨났다. 본래 패션은 혁신과는 거리가 먼 전통 도제식 산업, 기술이 분석해내지 못하는 소비자의 취향과 디자이너의 예술성이 절대적으로 성패를 좌우하는 분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점차 소비자의 경험, 또는 UX라는 단어가 단지 IT 서비스를 넘어서서 다양한 직군과 산업의 키워드로 자리를 잡았다. 소비자에게 양질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기업의 목표가 되었고, 패션 산업 역시 브랜드의 명성과 디자이너들의 역량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경험을 개선하는 데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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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에 매장을 열면서 이슈몰이를 했던 커피 프랜차이즈 ‘블루보틀’, 기존의 도서관식 장서 분류법 대신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분류법을 사용하는 복합문화공간 ‘츠타야’, 단순히 전자제품의 판매에 목적을 둔 상점이 아니라 활용법을 공유하는 플랫폼으로서 기능하는 ‘애플스토어’ 등은 모두 고유의 독특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성공을 거둔 브랜드이다. 그렇다면 어떤 패션 브랜드가 소비자의 취향을 분석해내고 그를 위한 “맞춤형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면? 소비자의 취향이 좌우하는 경향이 큰 패션산업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그 브랜드는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나날이 정교해지는 인공지능은 소비자의 취향과 같은 비정형 데이터도 분석해내고 있으며, 패션산업은 사람의 영감과 감수성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산업이 아니라 고객 개개인의 선호를 분석하고 만족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제품군을 제시하는 “데이터 기반 비즈니스(Data-driven Business)’로 변모하고 있다.


l 취향과 상황을 고려하는 ‘스티치 픽스(Stitch Fix)’의 큐레이션

딥러닝, 머신러닝, 데이터마이닝 등의 용어가 구분 없이 혼용되는 경향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AI)이란 기계 내지 컴퓨터가 ①사전에 수집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②일정한 패턴을 도출하여 ③앞으로의 일을 예측하는 자동화 메커니즘이라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을 듯하다. 이러한 수집과 분석, 예측 기능이 패션 비즈니스에 적용된 사례로는 미국의 스티치 픽스(Stitch Fix)를 꼽을 수 있다.

201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후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스타트업”이었던 스티치 픽스는 어느덧 나스닥 상장까지 마친 패션회사가 되었다. 스티치 픽스를 설립한 대표 카트리나 레이크(Katrina Lake)는 컨설턴트로 일한 경험을 살려 스티치 픽스의 사업 모델을 구상했다고 한다. 각 기업이 처한 상황을 분석하고 최적화된 전략을 제시하는 비즈니스 컨설팅과 마찬가지로, 고객의 패션 취향과 상황을 반영한 스타일 컨설팅을 제공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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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치 픽스에 접속하면 우선 개인은 각자의 스타일 프로필을 작성한다. 신체 정보, 평소 좋아하는 브랜드, 본인의 직업과 지출 예산 등을 입력한다. 스티치 픽스의 AI 알고리즘은 고객의 스타일 프로필과 함께 과거 구매 및 반품 내역, 구매 평, 비슷한 프로필을 가진 고객들의 선호 상품, 패션계 전반의 유행 등 광범위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 결과로 고객이 가장 선호할 만한 패션 아이템을 골라낸다. 의류와 액세서리 등 총 5개 아이템을 선정한 후 박스에 넣어 고객에게 “선물”하며, 고객은 이 아이템을 받아보고 마음에 드는 아이템만 구매할 수 있다. 이처럼 고액의 면대면(Face-to-face) 서비스를 예약하거나 개인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하지 않아도 집에서 손쉽게 맞춤형 스타일링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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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기본적으로 스티치 픽스가 수익을 얻는 방식은 다른 패션 리테일러들과 마찬가지로 도매가에 상품을 구입하고 소매가로 상품을 판매하면서 그 차익을 공략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티치 픽스는 인터뷰를 통해 기업이 철저하게 데이터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여러 번 강조한 바 있다. 정확한 분석에 따른 고객의 만족도 제고를 위해 스티치 픽스가 고용한 데이터 과학자는 80여 명 이상이다. 수학자와 통계학자, 천체물리학자와 신경과학자 등이 함께 일하면서 스티치 픽스의 큐레이션 알고리즘을 보완하고 있다. 2018년 스티치 픽스는 12억 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했는데, 올해는 영국 시장에도 서비스를 론칭하면서 그 이상의 매출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l 스마트 스피커 스타일리스트, 아마존 ‘에코 룩(Echo Look)’

2016년 시애틀 본사 1층에 무인매장 ‘아마존 고(Amazon GO)’를 선보이면서 “가장 혁신적인 쇼핑 경험을 제공하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아마존은 패션 분야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에코는 아마존이 개발한 인공지능 스피커로서 가상 비서 ‘알렉사'를 탑재하고 있어서, 사용자가 알렉사에게 명령을 내려 집안의 다른 스마트 기기들을 통제하거나 아마존 스토어에서 제품을 즉시로 주문하는 식의 서비스가 가능했다. 아마존 에코 룩(Echo Look)은 이러한 스마트 스피커에 카메라를 부착하여 사용자가 스피커를 일종의 인공지능 스타일리스트로 활용할 수 있게 고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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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가 “알렉사, 사진 찍어 줘"라고 명령을 내리면 스피커의 LED 카메라가 사용자의 사진을 찍는다. 에코 룩이 제공하는 기능은 스타일 체크(Style Check)와 데일리 룩(Daily Look), 컬렉션(Collection) 등이다. 예컨대 사용자는 스타일 체크 기능을 활용해 서로 다른 두 개의 옷차림 중 어느 쪽이 나은지 알렉사의 의견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이 의견이란 AI가 일련의 머신 러닝 과정을 통해 최근의 패션 동향, 옷차림의 자연스러움과 색상의 어울림 정도 등을 학습한 결과에 기반하는 것이다. 데일리 룩 기능은 그동안 사용자가 촬영한 옷 사진을 저장하고 분류하는 기능으로, 이와 연계해 사용자는 “출근 옷차림”, “주말 옷차림”, “저녁 모임 옷차림” 등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게 컬렉션을 만들어 사진을 관리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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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이 에코 룩을 개발한 근본적인 이유는 당장 스피커 사용자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옷을 차려입을 수 있게 돕는 데 있다기보다는, 에코 룩을 통해 패션 스타일과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하고 새로운 제품을 디자인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기 위함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마존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소셜 채널에서 수집한 이미자와 아마존 에코 륵을 통해 수집한 이미지를 모아 분석하고 현재 패션 동향에 적합한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서비스를 선보이고자 연구 중이다.


l 패션제품 생산에도 손을 뻗친 AI 디자이너들

이처럼 AI는 패션 비즈니스에서 소비자가 더 마음에 드는 상품을 고를 수 있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보다 앞선 단계에서 기업이 고객들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제품의 디자인과 생산에도 점차로 개입하고 있다. 이미 재고량 관리, 가격 책정 등과 같이 정량적인 데이터의 파악과 분석이 중요한 부문에서는 AI가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글로벌 패션기업인 에르메스와 타미힐피거, 슈퍼드라이 등은 이미 IBM의 인공지능 솔루션 ‘왓슨’을 활용해 제품의 가격 책정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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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들의 역할을 AI로 보완하고 심지어 대체하고자 하는 노력은 아마존과 같은 IT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타미힐피거는 지속적으로 IBM과 협력 중인 기업 중 하나인데, FIT 스쿨과 함께 패션디자인과 IBM의 인공지능을 결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상품의 창작 과정에서부터 인공지능을 도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인공지능은 컬렉션 발표를 앞둔 디자이너들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딥러닝을 통해 패션 트렌드를 예측하고 소비자의 심리를 분석하여 가장 적절한 디자인 테마를 결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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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 그룹 산하의 브랜드 아이비레벨(Ivyrevel)도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패션기업으로 손꼽힌다. 이미 아이비레벨은 201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 패션 테크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지속적인 R&D를 통해 “디지털 세대에 걸맞은 패션 디자인”을 위한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아이비레벨이 구글과 협력해 만든 인공지능 애플리케이션 ‘코디드 꾸뛰르(Coded Couture)’는 그 용어에서 알 수 있듯 “코딩된” 프로그램이 소비자의 옷을 “직접 만드는” 데에 서비스의 핵심이 있다. 사용자의 현재 위치와 자주 방문하는 장소, 거주하는 지역의 날씨, 즐겨 하는 활동 등에 대한 스마트폰 데이터를 전반적으로 수집하고 그를 분석한 후 소비자 맞춤형 드레스를 제작하는 것이다. 사용자는 이러한 ‘데이터 드레스(Data dress)’를 어플로 확인한 후 바로 주문, 결제를 진행하면 된다. 코디드 꾸뛰르는 SNS 인플루언서 등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 중에 있으며, 파일럿 단계를 마무리한 후 올해 말 본격적으로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스위스의 리치몬드 그룹이 운영하는 럭셔리 온라인 쇼핑몰 ‘육스네타포르테(YNAP)’는 SPA 브랜드 ‘8 바이 육스’를 선보였다. 8 바이 육스가 판매하는 제품은 SNS 인플루언서들이 선호하는 스타일, 육스네타포르테의 판매 기록, 고객 피드백과 패션계의 생산동향 등을 분석하고 그를 토대로 AI가 직접 디자인한 옷과 신발을 포함한다. 큐레이션 커머스로 시작한 스티치 픽스 역시 수년간 축적해 온 고객 데이터를 활용하여 자체 브랜드를 개발 및 생산하고 있으며, 여기에 인공지능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CB 인사이트가 앞으로 패션산업에서 AI를 활용한 생산방식이 점차 증가할 것이라 예측한 가운데, 소비자가 원하는 스타일과 사이즈를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소비자 관련 데이터를 분석하고 제품을 디자인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형태의 “자동화 디자인” 비즈니스가 본격적으로 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l 패션 스타일링에서 디자인까지, AI 활용의 확대 전망

물론 지금 당장 만나볼 수 있는 패션-AI 서비스도 많다. 온라인 커머스 시장에서는 소비자가 아이템을 보다 쉽게 검색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AI 기술 중 ‘딥러닝(Deep Learning)’을 특히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딥러닝은 이미지의 분석과 예측에 탁월한 역량을 보이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11번가와 신세계몰, 네이버쇼핑은 단어 대신 이미지로 상품을 검색하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소비자는 길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할 경우 그를 사진으로 찍어 검색할 수도 있고,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스타일과 비슷한 코디 세트를 구입할 수도 있다. 삼성물산이 운영하는 SSF샵 온라인몰은 소비자가 지금 보고 있는 아이템과 유사한 제품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과거 패턴을 토대로 소비자가 구매할 가능성이 높은 상품을 함께 제안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편리한 쇼핑 인터페이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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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온라인에서만 이러한 어시스턴트들이 활약하는 것도 아니다. 중국 최대의 E커머스 기업 알리바바는 중국 내 13개 매장에 패션 AI 시스템을 시험적으로 운영하는 중이다. 매장 방문자는 스마트 행거에 걸린 옷을 살펴보면서 해당 상품과 잘 어울리는 연관 상품을 제안받을 수 있다. 탈의실에 설치된 스마트 스크린을 통해 상품을 검색하고 선택하면 점원이 상품을 탈의실로 가져다준다. 특히 알리바바는 온라인 쇼핑 플랫폼 타오바오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온라인 채널과 오프라인 채널을 연동하는 ‘옴니채널’ 쇼핑 경험 구축에 노력하여 해당 AI 어시스턴트가 타오바오의 구매내역을 분석해 방문객에게 제품을 추천해주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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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이란 원래 사용자 개개인의 취향에 맞는 상품 내지 콘텐츠를 골라주는 맞춤형 서비스를 일컫는 용어다.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이 특정한 테마에 부합하는 작품을 선택하여 제시하듯이, 인공지능은 패션 큐레이터가 되어 소비자의 스타일에 어울리는 제품을 선택하고 제시하는 것이다. 선호와 취향, 평소의 행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고 비정형적인 인적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게 되면서, AI를 활용해 소비자에게 만족도 높은 제품, 더 나은 형태의 쇼핑 경험을 제공하려는 시도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여태껏 패션이란 재능을 가진 디자이너들이 영감을 발휘해 제품을 만드는 과정과 변덕스러운 소비자가 매 간 즉흥적으로 구매 결정을 내리는 과정의 연쇄고리로 이해되어 왔다. 여전히 패션에서 인적 역량은 중요하고, 일례로 스티치 픽스의 최종 상품 검수 역시 인간 스타일리스트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보다 다양한 방면에서 AI는 패션에 접목될 것으로 예상되며, 그에 따라 패션 산업 전반의 패러다임이 바뀔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못할 듯하다.




  • 배가브리엘

    여행, 영화,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사람입니다. 공연 프로듀서이자 안무가입니다.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를 연구하는 학생입니다. 앞으로도 글을 계속 쓰고 싶은 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