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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병으로 만들어진 스포츠, 과연 인류를 구할 수 있을까

  • 2020-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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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y 민석환

“구석기는 뗀석기, 신석기는 간석기, 청동기는 청동, 철기시대에는 철….” 우리는 먼저 이 땅에 살았던 세대들을 특정하기 위해 그들이 사용했던 도구들로 구분했고, 학창 시절 국사 시험에 단골 문제로 풀어야만 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먼 미래에 지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이전 세대와 구분하기 위해 어떤 도구를 택할까? 아마도 1950년대부터 급격하게 생산되었고, 분해하는 데 수백 년을 견뎌야 하는 플라스틱이 강력한 후보군에 있을 것이다. 이른바 ‘플라스틱 시대의 인류’.

인간의 과거를 말하는 역사 말고도, 지구의 역사를 다루는 지질학에서는 이미 플라스틱이 새로운 지질시대를 구분하는 기표석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캐나다 웨스턴 대학 등의 지구과학자들은 최근 미국 하와이 남동 해변 21곳에서 플라스틱이 섞인 돌덩어리들을 수집해 새로운 유형의 암석이라는 뜻에서 ‘플라스틱 돌(plastiglomerat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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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asmin Sessler on Unsplash(https://unsplash.com/photos/HfgMyrPrLxI)

지금도 바다에는 돌, 모래, 조개껍질들과 엉켜서 미래에 기표석이 될 플라스틱이 떠다닌다. 하와이 인근 태평양에서 ‘태평양 쓰레기장(Great Pacific Garbage Patch, GPGP)’이란 이름이 붙은 엄청난 규모의 플라스틱 쓰레기 섬이 있다. 크기가 무려 우리나라의 7배인데 쓰레기의 약 99%가 플라스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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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ohn Cameron on Unsplash (ⓒhttps://unsplash.com/photos/0kpPu9WPVmU 

경계가 없어진 플라스틱 재활용, 그리고 무한 루프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는 해변에 떠다니는 플라스틱에 주목해왔다. 2월 2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에디슨 고등학교에서 아디다스는 특별한 경기장을 개장했다. 경기장을 만드는데 버려진 플라스틱 병들을 사용한 것이다. 외딴섬, 해변, 해안 마을 등에 버려진 플라스틱 병을 세척된 뒤 재처리 과정을 거친 후 경기장에 들어가는 충전재로 썼다. 작은 알갱이 모양의 충전재는 미식축구 선수들에게 적당한 마찰력을 제공하면서도 지면으로부터 충격을 덜어준다. 

아디다스는 5년 전부터 플라스틱을 부분적으로 재활용한 신발을 생산해왔다. 그러나 2021년에 공식 출시되는 ‘퓨처 크래프트 루프(Futurecraft Loop)’는 기존의 재가공 시스템에서 완전히 탈바꿈한 신발이다. 이름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듯이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고, 무한으로 사용할 수 있다. 소비자가 운동화를 사용하다가 더러워지면 아디다스에 반납해 공장에서 분쇄를 거쳐 다시 새 신발로 만들어진다. 일반적으로 운동화는 다양한 재료와 접착제의 조합으로 만들어져서 재활용이 어렵다. 아디다스는 한 가지 재료를 사용하고 접착제를 빼 생산단계에서 재활용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퓨처 크래프트 제작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yRfWk-0_L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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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ULIAN ALEXANDER on Unsplas (ⓒhttps://unsplash.com/photos/DOjEoly80Qc)
 
나이키의 ‘Move to zero’, 첫걸음은 도쿄 올림픽 

세계 1위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도 지속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2월 5일부터 이틀 동안 뉴욕에서 개최된 ‘나이키 2020 포럼(Nike 2020 Forum)’은 앞으로 5년을 내다보는 쇼였다. 많은 스포츠 웨어와 신발들 중에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스페이스 히피 컬렉션’이었다. 미국의 육상 전설 칼 루이스가 선보인 스페이스 히피 컬렉션은 100% 재생 폴리에스테르를 이용한 유니폼과 신발이다. 곧 다가올 도쿄 올림픽에서 미국 대표팀은 ‘스페이스 히피 컬렉션’을 입고, 재활용한 제조 폐기물을 75% 이상 활용한 ‘베이퍼 맥스 2020’을 신을 예정이다. 앞으로도 나이키는 매립지에 버려지는 플라스틱 물병 10억 개 이상을 ‘플라이니트’ 신발과 방적사(紡績絲)로 활용할 계획이다. 

나이키는 작년부터 ‘무브 투 제로 (Move to Zero)’ 선언적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탄소 배출 0, 폐기물 0의 미래를 향한 로드맵’을 제안하고, 결과물뿐 아니라 각 과정에서도 다양한 층위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 기후변화 협약 탈퇴 선언으로 전 세계에 충격 빠뜨렸지만 나이키는 파리협약에 따를 것을 선언했다. 2030년까지 세계 공급망에서 탄소 배출을 30%가량 감축하고, 환경보전의 관점에서 북극해 항로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탄소 중립 선언으로 월드컵 개최에 성공한 카타르 월드컵 

2022년 FIFA 월드컵 개최지인 카타르는 당초 유력한 개최지가 아니었다. 축구를 하기에는 무더운 기후와 테러 위협, 적은 인구들이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막강한 오일 머니와 월드컵 유치에 대한 열망을 앞세워 마지막 월드컵 프레젠테이션에서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에서 태양광 발전을 활용해 월드컵 경기장의 좌석과 필드에 에어컨을 설치할 것을 약속했으며 나아가 탄소 중립을 선언하며 개최권을 획득했다. 최근 FIFA는 에어컨 설치에도 40도가 넘는 폭염에서 경기하는 건 역부족이라고 판단해 역대 월드컵들이 여름에 열렸던 것과는 달리, 카타르 월드컵은 겨울에 열린다. 

태양열을 이용해 친환경 경기장을 만들었던 경기장은 2016년 브라질 올림픽 경기장으로 사용한 마라카낭 경기장이다. 마라카낭 경기장은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결승전이 열린 곳으로 지붕 위에는 1,556개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여 경기장 운영에 필요한 전력을 생산했다. 마라카낭 경기장 지붕 위에 1556개의 태양광 패널로 만든 발전소로 240가구가 한 해 동안 쓸 전기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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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Ciel Cheng on Unsplash (ⓒhttps://unsplash.com/photos/HxhpV9tQd3s)

친환경의 원조는 파타고니아… 그러나 미세 플라스틱 논란도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버려진 플라스틱을 녹여 의류와 신발에 쓰이는 재생 폴리에스터로 재활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발상을 가장 먼저 시도하고, 성공한 회사는 요즘 양털 재킷으로 유명한 ‘파타고니아’다. 1993년 파타고니아는 의류업계 최초로 버려진 플라스틱 병을 모아 ‘신칠라’를 출시했다. 감촉이 부드럽고, 보온성이 뛰어나고, 한 벌을 만들 때 플라스틱 병 34개가 사용된 점을 강조하며 소비자들에게 ‘인도적 소비’를 호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플라스틱 병을 재활용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재생 폴리에스터가 미세 플라스틱 형태로 해양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있다. 2016년 파타고니아가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대학에 의뢰해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파타고니아 플리스 재킷을 세탁할 때 평균 1.7g의 미세 플라스틱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하수도를 거쳐 결국에 바다로 갈 때는 해양생태계 교란과 더불어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에게도 축적된다. 실제로 많은 해산물과 천연 소금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되고 있다. 파타고니아 측은 연구 결과가 발표된 당시 생태계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고 했지만 이후 미세 플라스틱을 걸러주는 세탁망을 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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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Patrick Hendry on Unsplash(ⓒhttps://unsplash.com/photos/PQa5vHHnpm4)

친환경도 완전한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 

지난해 10월 마라톤계의 대전환이 있었다. 비록 비공식 기록이지만 엘리우드 킵초게가, 인류 사상 최초로 42.195㎞의 마라톤 풀코스를 1시간 59분 40초 기록으로 2시간 안에 완주했다. 이 역사적 업적 뒤에는 나이키의 기술적 지원이 컸다. 

나이키는 킵초게를 위해 기존 베이퍼 플라이를 그의 발에 맞춤형으로 개조해 발뒤꿈치 부분에 탄소섬유 3장을 넣었다. 탄소 섬유를 겹쳐 깐 판이 지면에 착지한 후 에너지를 잠시 저장했다가 선수에게 되돌려주는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킵초게의 기록을 인정하지 않았고, 향후 공식 대회 착용 신발을 ‘모두가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이어야 한다’로 정했다.  

원래 러닝화의 목적은 경기력 향상보다는 부상 방지였다. 빠르게 달리는 것보다 안전하게 달리는 역할이었던 것이다. 킵초게가 인간의 한계를 깰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인식의 대전환에서 비롯된다. 

조금 솔직해지자. 이미 지구는 되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병들어 가고 있다. 유엔 환경계획에 따르면 매년 800만 t의 플라스틱이 전 세계 바다에 버려진다고 한다. 평균 4t 정도인 코끼리 200만 마리에 해당하는 무게다.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누구도 생산을 하지 않거나 지금 쓰는 물건을 아끼고 아껴서 누구도 소비하지 않아야 쓰레기가 더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이 아니라면, 아디다스의 ‘퓨처 크래프트 루프’처럼 완전히 버려지지 않는 모델이어야만 한다. 바야흐로, 대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 민석환

    한국체육대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지금은 숫자를 통해 스포츠를 이야기하는 브런치를 운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