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오전이면 다 나간다는 그것, ‘짜파구리’의 핵심 구성요소
라면이 빠질 수 없다. 컵라면, 봉지 라면을 골고루 짚는다. 라면 코너에서 유제품 코너로 카트를 돌릴 때쯤, “이것도 그거랑 되는 건가”라는 대화가 귀에 들어온다. '이것’은 무엇이며, ‘그거’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 목소리를 따라 몸과 시선을 돌려보니, 여러 종류의 짜장라면이 선반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내친김에 짜파게티나 하나 사 가야겠다 싶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지나가는 직원에게 문의를 해보니 돌아온 대답. “짜파게티는 오전이면 다 나가요. 짜파구리인가 그것 때문에.”
오호. 정답을 알았다. 위에서 말한 ‘이것’은 짜파게티를 제외한 짜장라면이고, ‘그거’는 너구리였다. 짜파게티가 다 팔린 것을 보고, 짜파게티의 대체재를 찾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목표물은 당연히 요즘 큰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다. 짜파게티가 아닌 짜장라면과 너구리를 합쳐도 짜파구리가 되는 건지 궁금했던 것이다.
주지하듯 짜파구리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하면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짜파구리는 초반에는 ‘람동(ramdon)’으로 번역되었다. 라면(ramen)과 우동(udon)을 합친 말로 한국의 특정 제품을 알지 못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끔 한 표현이다. 번역가 달시 파켓(Darcy Paquet)이 궁리 끝에 내놓은 조어인데, 언론은 그의 언어적 감각과 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상찬하곤 했다.
ㅣ모디슈머에게 제품의 재창조 과정은 일종의 놀이이자 게임
짜파게티와 같이 기존의 제조법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개인의 미감과 취향에 따라 제품을 재창조하는 사람들을 ‘모디슈머’라고 일컫는다. Modify(수정하다)와 Consumer(소비자)의 합성어다.
모디슈머는 남들과 똑같이 먹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이들은 기성의 방식을 창의적으로 비트는 데 굉장히 능하다. 그리고 자유롭게 변용해가는 단계를 사진과 영상으로 SNS에 알린다. 남들과 다르게, 그러면서도 더 재미있고 맛있게 먹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재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 모든 과정은 하나의 놀이이고 일종의 게임이다. 또한 모디슈머는 그 누구보다 능동적인 소비행태를 보이며, 참여와 소통을 중시한다.
ㅣ모디슈머를 둘러싼 사회적·디지털·리테일 환경
모디슈머가 주목받고 있는 배경은 크게 3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사회적 환경, 디지털 환경, 리테일 환경의 변화가 그것이다.
먼저 사회적 환경으로는 1인 가구의 증가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간한 ‘통계로 보는 사회보장 2019’에 따르면, 국내 1인 가구는 총 599만 가구(2019년 기준)로 전체 가구의 무려 29.8%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가구에서 1인 가구의 비중이 가장 높은 것이다. 1980년에 1인 가구의 비중이 5%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우리는 미국의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Eric Klinenberg)가 말한 싱글턴 사회(Singleton Society)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초개인화 문화가 보편화하고 있는 지금,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타인의 의견이 아니라 나 자신의 주체적인 생각이고 독창적인 개성이다. 이런 망탈리테(mentalite)가 의식주 모두에 반영되고 있고, 그중 가장 일상적인 ‘먹는 것(食)’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수정하기’가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환경으로는 유튜브를 위시한 개인 방송의 대중화를 꼽을 수 있다. 모디슈머는 ‘꿀 조합’을 만들어냈다는 디지털상에서의 공인을 받고 싶어 한다. 타인의 의견에는 휘둘리기 싫어하지만, 인정과 인기는 받고 싶어 하는 양가적 심리의 소산이다. 먹거리 분야에서 생겨난 때아닌 ‘인정투쟁(struggle for recognition)’이 SNS상에서 펼쳐지고 있다.